감기

분류없음 | 2008/11/26 21:39 | Larne

나는 잔병치레가 잦다.

 

감기도 자주 걸리고, 남들은 한 번 앓으면 된다는 볼거리(유행성 이하선염이라 하던가)도 대여섯번을 앓은 후에야 나았다. 면역력이 약한걸까.

 

평소 비염을 달고 사는 데다가 가벼운 감기를 자주 앓아서 요즘 갑자기 날씨가 추워지자 또 몸이 으슬으슬하고 콧물이 흐르기 시작하는가 싶더니, 결국 끙끙거리고 있다.

 

식당에 저녁을 먹으러 가려고 자전거를 탔다. 머리가 조금 멍-하고 기운이 없어서 출발부터 불안하다 싶었는데, 내리막길을 주르륵 미끄러져 가다가 배수로를 덮느라 살짝 튀어나온 턱에 자전거가 걸렸다. 덜컥.

 

왜 똑바로 앉지 않고 페달에만 몸을 싣고 있었는지, 브레이크를 쥐려던 손가락은 왜 꼬였는지, 앞으로 고꾸라지던 순간마저 '어?'하고 생각했던 이유는 또 뭔지.

 

"어, 어-." "아이고..."

 

우당탕.

 

사고를 자주 당했었다. 몸이 딱히 둔하거나 한 건 아닌데, 단지 주의력이 부족했던 탓이리라. 자전거, 오토바이, 승용차에 모두 치여봤다. 타짜에서 그러지 않나. 손은 눈보다 빠르다고. 내 몸은 생각보다 빨랐다. 다치기 싫었던게지. 낙법, 같은 기술은 모른다. 그냥 덜 아프려고 고개를 안쪽으로 숙이고 옆으로 넘어졌다. 스물 넷 청년이 자전거 타고 가다가 우당탕인가. 아, 쪽팔려.

 

-보다도 먼저 생각나는 것.

 

 '어디 옷 망가진 데 없나?'

 

주섬주섬 일어나 자전거를 일으켜 세운다. 두 갈래로 나뉘었던 길이 하나로 합쳐지는 곳이었는데, 다른 쪽 길에서 오던 아저씨 너댓분이 넘어지는 광경을 보셨던 거다. 위에 대사는 내가 낸 소리가 아니다. 아무튼 걱정하실까봐 고개를 꾸벅 숙여보이고는 옷 두어번 털고, 다시 자전거에 올라탔다. 왼쪽 무릎, 오른쪽 허벅지, 왼팔, 오른 손바닥. 내가 영어 사용자였다면 "오 나의 신이여." 라고 했겠지.

 

다시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대략적인 피해를 살핀다. 비싼 점퍼, 이상 없음. 청바지도 손상되지 않았다. 세세한 건 밝은 곳에서 봐야 알겠지만. 오른쪽 손바닥이 쑤셔서 보려고 하니, 오 나의 신이여. 장갑 손바닥이 엉망진창이다. 하긴 아스팔트도 아니고 시멘트 바닥이었으니. 손바닥을 살려줘서 고맙다. 하지만 오 나의 신이여, 로군.

 

투덜거리며 저녁을 먹고, 다시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 자전거는 어디 상한 데 없나. 룸메건데. 생각보다 감기기운이 심했군. 운운.

 

점퍼는 오른팔 쪽이 살짝 긁혀서 조직이 손상. 심하진 않다. 바지는 의외로 노 데미지. 눈으로 보기에는 그렇다고. 결국 장갑만 초토화됐다. 웃기는 게, 왼손은 살짝 긁힌 자국만 났다는 거. 무어, 못 쓸 정도냐고 하면 그렇지는 않다. 보기 상당히 흉해서 그렇지. 손바닥 쪽이니까 조심하면 잘 보이지 않을테고. 그래도 마음이 편치는 않다.

 

집에 돌아와서 옷을 갈아입고, 책을 펼쳐들었다. 비판해야 하거든. 하지만 선배 왈, 이 책은 거의 완벽해서 흠잡을 데가 없을거야. 그 완벽하다는 책이 무엇인지 궁긍할 시점이다. 정답은 교육과정. 고등학교 교육과정, 그 중에서도 시민윤리 부분이다. 지금은 개정중이고 내가 보는 건 7차 교육과정. 완벽에 가깝다고 하면 가까울지도 모른다. 이상적인 말 써놓고 비판하라고 하면 "현실은 이게 먹히지 않습니다."라고 하는 정도밖에 더 있을까? 하지만 혼자 하는 과제가 아니어서 구시렁은 속으로. 비판하지 못하면 그냥 설명이라도 하란다.

 

허리가 아프다. 넘어진 어디 잘못됐나?

 

정말 "오 나의 신이여."를 자주 연발하게 되는 하루.

인사동을 걷다가 문득 눈에 띄어 들어가게 된 전시회. 아마도 개인전 감상은 처음이라고 기억한다. 입구에 써 있는 약력과 소개를 읽은 후,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첫 작품을 보고 떠오르는 감상. "이걸 정말 연필 하나로 지우개질 없이 그렸단 말인가?"
금방이라도 움직일 것 같은 개미 무리의 그림. 어릴 때 거의 눈 앞에 가져다놓고 봤던 개미를 그려놓은 것만 같았다. 관절(이라기엔 어색하고 다리와 더듬이가 툭 꺾이는 부분)에 해당하는 곳도, 배 부분(개인적으로는 꼬리라고 부르고 싶지만)의 줄무늬도 자연스럽게 슥슥. 치밀한 관찰과 집요한 노력이 아니고서야 나올 수 없는 그림이다.
다소 지쳐있던 터라 가볍게 둘러보고 나갈 생각이었는데 1층의 작품들을 보고 나니 자연스럽게 2층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무언가 좀 보고 싶었다.
원석연 화백의 그림은 정말 집요하다 표현할 정도로 세심하게, 그렇지만 화려하지 않게 그려졌다. 소재들은 거의 우리가 주변에서 늘상 볼 수 있는 것들이고, 역설적으로 늘상 보기에 제대로 살피지 않는 것들이었다. 굴비의 주름이나 표면의 무늬(비늘일까?) 마저도 너무나 숨막힐 정도로 표현해낸 것을 보니 감탄이 절로 나올 수밖에.
그 외에도 강아지, 새, 앙상하게 마른 나무와 새 둥지, 마늘, 판자촌, 원두막……. 우리가 늘 무심하게 지나치는 것들을 담담하지만 치밀하게, 그것도 연필 하나만으로 그려낸 것을 보고 있자니 이런 것이 예술이구나 싶었다.

여담.
늘 마음이 공허하던 시절, 나는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떤 것이든 하고 나면 그것이 나를 이루는 근간이 되리라 믿으면서. 이제 그런 강박적인 생각이나 행동은 하지 않지만, 오히려 그 시절-혹은 더 이전의 자신-이 더욱 치열하게 살아가고자 노력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씁쓸한 기분이 든다. 고민도, 걱정도, 노력도, 불안도 없는 자신에게.